
인공지능(AI)이 설계한 암 치료제가 곧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 들어갈 예정이다. 최근 바이오테크 기업들과 의료 연구기관들은 AI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항암제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 약물들이 실제 환자에게 투여되는 첫 번째 임상시험이 조만간 시작될 전망이다. 기존의 신약 개발 과정은 평균적으로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수십억 달러의 비용이 들어간다. 그러나 AI의 도입으로 후보 물질 발굴과 최적화 과정이 대폭 단축되고 있다.
영국의 바이오테크 기업 엑스사이언티아(Exscientia)는 딥러닝 기반 플랫폼을 통해 암세포의 특정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신약 후보를 개발했다. 이 회사는 최근 영국 보건당국의 승인을 받아, 이 약물을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1상 시험에 투입할 계획이다. 임상 1상 시험은 주로 약물의 안전성과 부작용, 적정 투여량을 확인하는 단계로, 소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엑스사이언티아는 이번 임상시험에서 AI가 설계한 신약이 실제 암 환자에게서 어떤 효과를 보일지, 그리고 기존 치료제와 비교해 어떤 차별성을 보일지 주목하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미국의 인실리코 메디슨(Insilico Medicine)도 AI가 설계한 항암제 후보 물질을 임상시험 단계로 진입시키고 있다. 인실리코 메디슨은 AI 알고리즘을 활용해 수십억 개의 화합물 중에서 암세포 성장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구조를 찾아냈다. 이 회사는 이미 동물실험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으며, 현재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준비 중이다.
AI가 신약 개발에 활용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AI는 방대한 양의 생물학적, 화학적 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약물 후보를 빠르게 도출한다. 둘째, AI는 약물의 분자 구조를 예측하고, 해당 구조가 목표 단백질에 어떻게 결합하는지 시뮬레이션한다. 이러한 방식은 기존의 실험적 접근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신약 후보를 발굴할 수 있게 해준다. 실제로 엑스사이언티아와 인실리코 메디슨 모두 AI를 활용해 신약 후보를 도출하는 데 걸린 시간이 1년 미만이었다. 기존 방식에서는 동일한 과정에 4~5년이 소요된다.
AI 신약 개발의 또 다른 장점은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이다. 신약 개발 과정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임상시험에서의 실패다. AI는 초기 단계에서 수많은 후보 물질의 효능과 안전성을 예측해, 임상시험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은 후보만을 선별한다. 이에 따라 전체 신약 개발 과정의 성공률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AI가 설계한 신약 후보들은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작용 메커니즘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엑스사이언티아가 개발한 항암제는 암세포의 성장 신호를 차단하는 동시에, 면역세포의 공격력을 강화하는 이중 작용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다중 표적 치료제는 암의 재발이나 내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현재 AI 신약 개발은 암뿐만 아니라 희귀질환, 신경계 질환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도 AI 기반 신약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화이자, 노바티스, 로슈 등 대형 제약사들은 AI 스타트업과 협력해 신약 후보 발굴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AI가 신약 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꿀 기술로 평가하고, 향후 AI가 설계한 약물이 임상시험을 통과해 상용화에 성공할 경우, 의약품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한다.
한편, AI 기반 신약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윤리적·법적 쟁점도 제기되고 있다. AI가 설계한 약물의 특허권 문제, 임상시험에서의 환자 안전성, 데이터의 투명성 등이 주요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AI가 신약 개발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분명하지만,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 분야인 만큼 충분한 검증과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국내에서도 AI 신약 개발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최근 한 국내 바이오기업은 AI를 활용해 폐암 치료제 후보를 발굴해 동물실험에 성공했다. 이 기업은 내년 중 임상시험에 착수할 계획이다. 정부도 AI 신약 개발을 국가 전략사업으로 선정하고, 연구개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AI를 활용한 신약 개발은 미래 의료산업의 핵심”이라며 “안전성과 효과를 최우선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신약 개발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AI가 설계한 암 치료제가 실제 환자에게 투여되는 임상시험은 신약 개발사뿐만 아니라 의료계와 환자, 투자자 모두의 관심을 끌고 있다. 만약 AI가 설계한 신약이 임상시험에서 안전성과 효능을 입증한다면, 신약 개발의 효율성과 성공률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AI와 바이오 기술의 융합이 의료 분야에서 어떤 혁신을 가져올지 주목된다.